"죽는 것이 무서운 것은 사실이나,
천주를 부정하는 것은 천 배나 더 무섭습니다." -성 손자선 토마스
손자선토마스 이미지
손자선 토마스(1844-1866년) "나는 솔직히 죽는 것을 몹시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죽는 것보다 몇 천배 더 무서워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주님이시오,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손자선 토마스는 충청도 홍주 거더리 마을에서 3대째 천주교를 믿으며 순교자를 배출한 열심한 신앙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 다블뤼 주교가 체포되고 며칠 후, 포졸들이 거더리 마을에 들어와 신자 집을 샅샅이 뒤져 많은 물건을 빼앗아 가면서, “손씨 집안에서 누구든 사람을 보내 몰수된 물건을 찾아가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를 받고 용감한 손 토마스가 자진하여 덕산 관가에 나가서 찾아온 사유와 자기가 천주교 신자임을 밝혀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관가에서 갖은 고문으로 그의 의지를 꺾으려고 애썼으나 모두 허사였고, 곤장을 치다 못해 다리를 묶어 거꾸로 매달았다. 그리고는 토마스의 입에 여러 가지 쓰레기를 쏟아 부으면서 조롱하였지만 토마스가 굴하지 않자 덕산 관장은 그를 해미로 압송하였다. 그는 해미에서 두 다리가 부러질 만큼 더 심한 형벌을 받았으나 신앙을 지켰으며, 마침내 공주 감영으로 압송되었다.
공주에서 관장은 특수한 수단을 생각하여 “네가 배교하지 않는다는 증표로써 이빨로 너의 손 살점을 물어뜯어 보아라.”고 하자, 토마스는 즉시 자신의 양팔을 물어뜯어 피가 흐르게 하였다. 결국 토마스는 공주 감영으로 압송되어 1866년 3월 31일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68년 로마 베드로 대성전에서 시복되고 1984년 5월 3일 서울 여의도에서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