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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존창은 전교에 힘쓰다가 체포되어
갖은 유혹과 고초를 받았으나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

‘내포의 사도’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 (1752∼1801)

예산 여사울에서 태어난 이존창 루도비코는 1784년 양근 지역의 권일신 프란치스코에게 세례를 받았다. 내포를 중심으로 한 충청도 지역의 천주교는 이존창에 의해 가장 먼저 왕성하게 전파되었다. 그는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이 만든 ‘평신도 성직제도’에서 신부로 임명되어 복음 전파에 앞장서기도 했 다. 그러다가 조상 제사 문제로 시작된 신해박해(1791년) 때 체포되어 심한 고문과 회유 끝에 배교하고 풀려났다. 그러나 깊이 뉘우치고 더욱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하여 내포 인근 지역은 어느 곳보다 천주교가 성했고 박해 때마다 수많은 순교자를 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는 이존창의 조카딸의 손자이고 최양업 신부는 누이의 증손이다. 이존창은 중국인 주문모 신부의 지도로 전교에 힘쓰다가 체포되어 천안에서 6년간 연금 생활을 겪으며 갖은 유혹과 고초를 받았으나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신유박해(1801년) 때 의금부로 압송되어 최창현 요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오랫동안 복음을 전파한 공주로 이송되 어 황새바위에서 참수형으로 1801년 4월 10일 그의 나이 50세에 순교하였다.

최종여 나자로와 최천여 베드로

경상도 출신으로 부모의 가르침으로 일찍이 입교하였다. 이들 형제는 부모와 함께 산곡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1866년경에 목천 소학골에 거주하 고 있었다. 병인박해가 일어나면서 10월 10일 형제가 함께 체포되었고 며칠 목천에 갇혀 있다가 공주로 이송되어 12월 14일에 형제가 함께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고의진 요셉

고의진 요셉은 19세의 나이로 12월 14일 공주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배문호 베드로

1866년 12월 24일 23세의 나이로 최종여, 최천여 형제와 같은 날 순교하였다.

김화숙 베드로

중인 계급으로 회장직분을 지녔던 김화숙 베드로는 1867년 4월 9일 공주옥에서 59세의 나이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고선양

고선양은 부인과 아들 세 명, 며느리 세 명과 함께 모두 순교하였다. 장남의 나이가 25세, 차남은 22세, 막내며느리는 21세였다. 고선양은 병인박해 다음해인 1867년 순교하였는데 ‘죽어도 천주님을 배반할 수 없다.’는 신앙고백과 더불어 향옥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