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서 순교하신 분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그 수는 오직 천주님만이 아시느니라. -달레《한국천주교회사》 中
참수처형지로서의 순교성지 이미지
참수처형지로서의 순교성지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참수 처형으로 대표되는 순교성지이다. 특히 박해시대 초기에는 사형 판결을 받은 사학죄인들에게 해읍정법이 적용되었는데, 이는 백성들에게 천주학을 경계하고자 사학죄인들을 출신 고향에서 공개 처형한다는 의미이다. 사학죄인으로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이 배교를 거부할 경우 사형 판결 권한을 위임 받은 관찰사의 명령에 따라 제민천변 황새바위에서 참수 처형 되었다. 황새바위 순교성지의 위치는 지리학적으로 금강의 본류와 제민천의 지류가 만나는 모래사장으로 공개처형지로서의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공주지역 100여 년 순교 역사의 현장 이미지
공주지역 100여 년 순교 역사의 현장

1784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이 세례를 받고 고향 내포에 내려와 신앙을 전하면서부터 시작된 내포교회는 곧 박해에 부닥치게 되었고 기록상 마지막 순교자를 낸 1889년까지 100여 년 간 공주는 박해의 땅이었다. 신유박해(1801년)부터 시작하여 이존창 루도비코 및 이국승 바오로 등 16명이 이 시기에 참수처형 되었고, 병인박해(1866년) 시기에는 약 1,000여명의 순교자가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공주는 천주교 4대 박해와 함께 100여년 순교 역사의 현장이다.

한국 최대의 순교자를 기록으로 남긴 순교성지 이미지
한국 최대의 순교자를 기록으로 남긴 순교성지

공주는 내포와 더불어 천주교 전파가 가장 활발했던 곳이며, 조선시대에 충청감영이 있었기에 천주교인들이 가장 많이 처형된 곳이다. 충청도·경상도·전라도에서 잡혀온 천주교 신자들은 감영으로 이송되었으며, 배교하기를 거부할 경우 사형판결 권한을 위임받은 관찰사의 명령에 따라 처형을 당하였다. 지금까지 자료조사를 통하여 발굴된 순교자는 총 337명으로 이는 한국 최대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신앙교육의 현장 이미지
신앙교육의 현장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순교자의 처절하고 용기 있는 신앙인으로서의 삶의 모범을 통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앙이 무엇인지, 신앙인으로써 무엇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삶의 자리를 돌아보고 새로 나는 장소, 은총의 배움터이다.